
마술적 리얼리즘 가족 드라마
남은 방의 문법
작가 카를로스 리베라
줄거리
할머니가 떠난 뒤, 세 남매는 오래된 집을 방마다 나누어 팔기로 한다. 첫 선이 벽에 그어진 밤부터 집 안의 오래된 방들이 조용히 짐을 싸기 시작하고, 막내 해림은 자신이 지키려 했던 가족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미리보기
훗날 해림이 낯선 원룸의 싱크대 밑에서 8시 20분마다 종이테이프 뜯기는 소리를 듣게 될 때에도, 그녀는 2026년 9월 23일 아침 거실 벽에 붙인 첫 마스킹테이프의 냄새를 먼저 기억했다. 할머니의 집은 비 온 뒤 나무가 불어 오른 냄새와 오래 끓인 보리차 냄새를 한꺼번에 내뿜고 있었고, 태오는 회색 셔츠 소매를 걷은 채 줄자 끝을 못처럼 벽에 눌렀으며, 미서는 붉은 립스틱을 컵 가장자리에 묻힌 채 “부동산도 이제 가내수공업이네” 하고 웃었다.
해림은 웃지 않았다. 캔버스 가방 안쪽 주머니에는 2026년 10월 15일까지 계약금을 넣어야 하는 독립 원룸의 메모와 보증금 4000만 원을 계산한 종이가 접혀 있었고, 손등의 작은 상처에는 전날 할머니 제사상에서 깎은 배의 단물이 아직 끈적했다. 그녀는 태오가 “9월 30일 전에는 도장 받아야 해, 막내야”라고 말할 때마다 물컵을 식탁 가장자리로 밀어 두었는데, 말이 넘치면 누군가는 물이라도 마셔야 한다는 오래된 버릇 때문이었다.
등장인물
윤
윤해림
주인공
할머니의 마지막 보호자였던 해림은 이제야 자기 방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벽에 선을 긋는 순간, 집은 그녀가 잊으려 한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낸다.
윤
윤태오
의문의 인물
장남 태오는 집을 팔아야 모두가 산다고 말한다. 그의 계산은 차갑지만, 그 안에는 한 번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두려움이 숨어 있다.
윤
윤미서
핵심 인물
둘째 미서는 누구보다 먼저 웃고 누구보다 늦게 상처를 말한다. 집을 팔자는 말에도, 남기자는 말에도 그녀는 자꾸 다른 방의 문고리를 만진다.
박
박선자
핵심 인물
선자는 세입자라 불리지만, 이 집에서 가장 오래 문을 열고 닫은 사람이다. 그녀가 꺼내는 줄자는 방의 크기보다 사람들의 빚진 마음을 먼저 잰다.
고
고은례
핵심 인물
은례는 오래전에 떠난 사람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현실적인 이삿짐 목록을 들고 나타난다. 그녀가 싸는 물건마다 집안의 오래된 셈이 조금씩 흔들린다.
